육대륙에서의 선교- 멕시코시티 와 오늘의 구원 – 방콕

근대 선교의 역사
2018. 10. 25 
주제: 1. 육대륙에서의 선교- 멕시코시티 1963
2. 오늘의 구원 방콕 1972-1973
 
1. 육대륙에서의 선교- 멕시코시티 1963
교회와 선교의 통합은 세계 모든 지역에서 선교하는 교회 활동의 비전에 영감을 주었다. 기독교 왕국 모델에 의해 형성된 서구교회가 선교적 본성을 회복해야는 처지가 되어 더 이상 선교는 파송국가와 수용국가라는 선교의 경계선이 허물어졌다. 이후 그것은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가는 선교의 문제가 되었다.
이 대회는 선교의 경계를 제거함으로 암묵적으로 문화적 다원성과 다양성을 확증하게 되었다. ‘육대륙에서(in) 육대륙을 향한(to) 선교가 모든 대륙의 기독교인들 사이에 상호성을 포함하였기 때문에 에큐메니컬 선교학의 지속적인 주제가 된 선교 안에서의 일치는 다양성속의 일치(unity in diversity)라는 새로운 조명안에서 이해되기 시작했다.
-“서구 기독교 왕국에서 비기독교 국가들로 인식된 지역을 향한 조직된 선교사역을 의미하는 선교들(missions)’에서, 어디에 있든지 간에 교인을 통해 교회의 하나의 , 거룩한, 사도적, 공교회의 사역으로서의 선교(mission)’로 태도가 변화된 것을 반영하였다[1].
 
멕시코시티 대회가 주는 메시지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와 우리의 사역그리고 인종, 국가, 신앙, 혹은 신앙의 결핍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스도의 온전한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온 교회가 증거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인다.
1. 전 인류를 향해 삶의 혁명적 변화에 과학과 기술 발전은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인간의 삶의 질 개선 기여
-인간과 기술의 주종 관계 문제 제기
2. 자연에 대해 인간의 지배가 커져감에 따라 책임감도 같이 가야한다.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자유에 대한 유일한 보장이다.
3.
a 이 세상이 하나님의 세상이라는 것을 확언한다.
우리는 세속 세상을 이해하고 그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도록 부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이 오직 하나님을 섬길 때만 자유한다는 것을 확언한다.
b. 이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 분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계시하신 것을 확언한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모든 사람이 이것을 알 권리가 있고 그것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알리기 위한 일에 헌신한다.
c. 모든 기독교인이 그리스도를 알려야하는 과제에 함께하도록 부름받았다고 확언한다. 우리는 이제 공동 계획공동 행동으로 실천할 때가 왔다고 믿는다. 그리스도가 나뉘지 않는다는 사실은 선교사역의 구조안에서 분명히 드러나야한다.
d. 따라서 우리는 이 선교 과제가 하나이며 일치가 요구된다는 것을 확언한다. 모든 나라에서 교회가 동일한 본질적 과제에 직면하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이다. 선교과제는 일치가 요구되는데 이는 그것이 한 분 주님을 향한 순종이기 때문이며, 우리가 서로 고립된다면 세속화된 혹은 비기독교 세계에 효과적으로 증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e. 우리는 선교사역이 경계를 가로지르는 것을 의미한다고 확언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한 문화와 나라를 떠나 다른 문화의 사람들에게 나아가는 진정한 기독교 선교사이다. 이런 선교사의 형태가 비즈니스, 전문직 기술, 산업기술, 공직자로 나타나며, 기독교인들은 사무실, 공장, 학교, 농장 등 많은 현장 일터에서 사회적이고 인종적인 관계안에서 평화와 정의 실현을 위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선교운동이 이제 육대륙과 온 땅의 기독교인들을 포함하는 것임을 확언한다.
 
질문 1. 기술과학의 발전으로 야기된 당시(1960년대 자동차, 항공기, 컴퓨터 등장)뿐아니라 오늘날 선교와 관련되어 선교 패러다임을 변혁시켜왔다고 본다.
1차산업혁명(1784) ---> 윌리엄 케리에 의한 해안선 중심의 선교시대를 염(17921910) -118년간 해안지역 선교
2차산업혁명(1870) ---> 허드슨 테일러에 의한 내지선교의 선교시대를 염 (1865-1980) - 115년간 내륙지역 선교
3차산업혁명 (1969) ---> 캐머런 타운센트 와 도날드 맥가브란에 의한 종족선교 시대를 염 (1934- 2024?) - 90년간 미전도 종족 선교
4차산업혁명 (2025) ---> 초연결과 인공지능으로 모든 사물과 디지털로 소통할 수 있는 시대로 진입하게 됨에 따라 디지털 네이티브의 탄생과 이들을 위한 선교시대에 걸맞는 선교가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 디맹(?)을 위한 IT 선교시대. 교회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여야하는가?
 
2. 오늘의 구원 방콕 1972-1973
서구파송교회의 역할 재조정과 신생교회의 새로운 선교 동반자로서의 등장을 위한 장이 마련되기 시작하였다.
선교의 작동 관계 재조정 시도로 상황 신학에 대한 새로운 강조와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인식으로 복음 전도를 위한 헌신과 개인적 회심에 관련된 사회-정치적 관심을 균형있게 다루려는 노력을 만들어 냈다.
방콕 대회는 죄인의 칭의와 사회-정치적 정의 양측면에서 구원을 강조하였고 이로 인해 복음주의자들은 구원의 신학이 충분히 선명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 (선교 일치 운동에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 중반까지 세계는 다양한 사회 정의 운동이 일어났다. 1968년 웁살라 총회는 이런 양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파리 학생 폭동 (1968. 5)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사회를 향한 문화적 변혁 운동
공산주의 프라하 침략 체코의 개혁파 공산당 지도자들이 이끈 자유화 운동(두브체크는 8개월간의 민주, 자유화 운동: 프라하의 봄으로 알려져 있다.
베트남 전쟁(1955-1975) - 냉전시대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대결
중국의 문화 혁명 (1966-1976) - 프로레타리아 민중과 학생 폭력 운동을 통한 부르조아 계급 지배 철폐를 위한 공산주의 혁명
라틴 아메리카의 파시즘과 공산주의 대결
미국 히피의 좌파운동 과 미국 시민권 운동 확산(1967- 히피문화, LA 흑인 폭동, 자유 평화 대중 문화 확산
웁살라 총회는 사회전반에서 하나님의 역사(action)를 둘러싸고 형성된 선교 이해라는 측면에서 선교의 교회중심적 관점으로부터 떠난 회중적 선교구조로 변화된다. 하나님-교회-세계선교 구도가 아니라 하나님-세계선교-교회 구도로 나가야한다고 호켄다이크의 주장(흩어지는 교회: 디아스포라 형태 교회의 형태 주장, 세상에서 교회로 이주)을 따랐다[2].
복음주의자들에게 방콕대회는 사회적, 정치적 영역으로 매우 치우쳤고 구원의 신학이 사회복음으로 치우쳐 있다고 판단하여 도널드 맥가브란이 지적하였듯이 전도가 말과 행동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과 사람들이 그분의 제자와 그리스도 교회의 책임있는 구성원이 되도록 설득하는 것을 멈추고(뒷전으로하고), 정의, 공의, 평화의 방향으로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으로 (복음이) 변화되었다[3]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우려로 에큐메니커주의자들과 복음주의자들간의 결별이 발생하게 된다. 복음주의자들은 이후 로잔세계복음화위원회를 설립하여 활동하게 된다.
 
질문 2. 웁살라 총회에서 형성된 교회(기관)중심적 관점에서 회중적 선교구조로서의 선교 변화가 사회-정치적 정의 실현으로 치우치게된 근원적 원인은 무엇인가? 에큐메니칼 선교와 로잔복음주의 선교로 결별을 신앙적으로 어떻게 이해되어야하는가?
 
분과위원회별 활동
분과
주요 활동 내용
1
분과
문화와 정체성
회심과 문화적 변화에 대하여
1. 회심에 대한 실존적 경험(개인이든, 집단이든, 사건이든, 과정이든)을 합리주의적 사고틀로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소통의 방식을 찾아내야한다고 보고함.
-회심은 포괄적 개념이므로 개인뿐 아니라 집단의 사고, 현실과 행동에 관한 관점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여기에 기독교의 회심은 하나님, 특히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공동체안에 들어와 작용함에 있어 문화마다 다향한 형태를 취할 수 있음을 견지하였다.
-개인적 회심은 항상 사회적 행동으로 연결되지만 그 형태는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 사회, 정치적 변혁을 위한 사회/구제 운동으로 나타날 수 있거나 혹은 온전한 시민 생활로 침투하는 운동으로 나타나기도한다.
-그리스도께로 회심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성경연구와 봉사활동을 통해 잘 지탱되어 그 회심한 경험을 갱신할 수 있게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같은 회심 경험은 획일적이지 않고 장소와 환경에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이는 곧 회심과 사회 변화사이의 관련성이 분명하지만 그 역은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
2. 문화 혁명, 하위문화 또는 대항 문화 등 어떻게 명명하든 간에 어디서나 사람들은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고 있다.
-기독교 공동체안에서 경험들은 상황에 영향을 주고 받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서술되기는 어려우며 적당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한 채 주저하면서 참여하고, 우리 자신을 확인하면서 어느 정도 변증법적 관계 안에서 살아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3. 하나님의 현현(manifestions)은 언제나 놀랍다. 그분께서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시는 상황과 삶의 영역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이 전 창조 세계안에 임재하심을 믿는다.
-비록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기대하고 성령께서 인류의 신음소리까지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세밀한 부분까지 볼 수 있는 그런 능력까지를 우리에게 주지는 않는다. 어떠 상황 속에서도 그분의 지시를 따르고 더 깊은 회심의 과정으로 인도함을 받아 주님을 더욱 겸손히 예배하게 한다.
2분과
하나님의 선교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이 분열된 세상에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4:18-19) --> 복음의 scope를 나타내보이는 것으로 이해됨(발제자주). 즉 영적인 포로됨에서 자유함을, 잘못된 지식으로 살아가는 자들을 향한 새로운 세상을 깨닫게함,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눌린 자들을 향한 해방과 자유함.
-그리스도께서 가져오시고, 그 안에 우리가 참여한 구원은 이 분리된 삶에 총체적 온전함을 제공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충만에서 참 인간으로 드러나는 새로운 삶으로써 구원을 이해한다(2:9)-영혼과 몸, 개인과 사회, 인류와 탄식하는 피조물의 구원이다.
교회와 기독교인의 구원과 해방
그리스도를 위해 불의와 억압에 대항하는 경제적, 정치적 투쟁에 관여하는 많은 기독교인은 오늘날 기독인과 참 교회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교회와 스스로에게 묻는다.
- 지배계급들, 인종들, 나라들에 대한 관심에 포로된 상태로부터 교회를 구원하지 않으면, 구원하는 교회는 존재할 수 없다.
-구조적 불의와 폭력에 공모하는 것으로부터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행방되지 않으면, 인류를 해방시키는 교회는 존재할 수 없다.
교회가 억압적 권력과 타협함으로 우리의 이기적 무관심, 사랑 없음, 두려움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오용했음을 고백해야만 한다.
우리는 구원을 위한 에너지를 활성화할 은사적 교회를 추구한다.
우리는 해방을 위한 행동을 시작하고, 자기 이익을 계산하지 않는 다른 해방적 그룹(단체)들의 일을 지지하는 교회를 추구한다.
3. 네가지 차원에서의 구원
구원의 포괄적 개념안에서 네가지 사회적 차원의 구원 사역을 본다
a. 공정 경제 정의 실현으로의 구원
b. 정치 억압에서 해방과 인간 존엄 실현으로의 구원
c. 인간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차별로부터의 구원
d. 개인의 절망을 희망으로 변화시키는 구원
4. 구원사역의 수단과 기준
a. 경제적 힘을 사용하지 않고 경제적 힘에 참여하지 않고서 경제 정의를 생성할 수 없을 것이다.
b. 정치권력을 선별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정치 권력에 참여하지 않고서 정치적 자유를 얻지 못할 것이다.
c. 문화적 영향력을 사용하지 않고, 문화적 소외를 극복할 수 없다
d.
기독교 전통은 폭력의 정당화와 정치권력에 대한 거부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이 질문에 모호한 입장이다.
그러나 제도화된 폭력, 구조적 불의, 그리고 합법화된 부도덕의 경우에, 사랑은 또한 우리가 가진 가능성들 가운데 책임 있는 선택인 저항할 권리와 압제자를 진압할 (스코트랜드 신앙고백)의무를 수반한다[4].
 
질문 3. 회심 대한 실존적 경험들이 다양한 형태로 공동체와 사회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방향으로 운동이 일어났던 것을 과거 평양대부흥등과 같은 부흥운동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오늘날 교회의 회심자들이 보여주는 기독교의 회심을 사회정의/복음전파/하나님나라 질서 구현 차원에서 어떻게 / 어디까지 표현해야하는가?
 
질문 5. 구조적 불의와 폭력에 공모하는 것으로부터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행방되지 않으면, 인류를 해방시키는 교회는 존재할 수 없다는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야하는가

참고자료
1. Birgita Larsson and Emilio Castro, “From Missions to Mission, ” in John Briggs Mercy Amba Oduyoye and George Tsetsis, A History of the Ecumenical Movement, Volume 3, 1968-2000(Geneva: WCC, 2004), 125
2. J.C. 호켄다이크 (이계준 옮김), 흩어지는 교회, 대한기독교서회, 2000
3. Donald A. McGavran, “Salvation Today,” in Ralph WIntr(ed.), The Evangelical Response to Bangkok, 1973
4. Bangkok Assembly 1973,: Minutes and Report of the Assembly of the Commision on World Mission and Evangelism (Geneva: WCC, 1973), 75-78, 88-90; Kinanmon and Cope, The Ecumenical Movement, 354-358

댓글

전문인 직업으로 선교에 동참하시길 원하십니까?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사도행전에 나타난 누가의 세계관

선교와문화인류학(폴 히버트) – 비판적 상황화(7장)와 자기 신학화(8장)

세계기독교사 - 종교개혁의 확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