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예언서 호세아서 고찰

Hosea
God in Hosea, Israel in Gomel

교과목명: 구약성서개론
소예언서 호세아서 고찰
2018. 06.07 
호세아와 같은 하나님, 고멜과 같은 이스라엘
호세아는 이스라엘 왕 요시아의 아들 여로보암 II세 때 예언한 선지자로서, 그의 활동은 주전 750년에서 사마리아가 함락되던 전해인 722년 사이일 것이라고 본다. 호세아서는 주로 북방의 열 지파로 구성되어 있는 이스라엘을 향한 예언이다. 유다에 대한 언급이 14(1:7, 4:15, 5:5)나와 있지만, 대부분 에브라임이라는 명칭이 36번이나 언급되는데 이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이름이기도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도 43회 언급되었다. 이 시기에 북이스라엘은 근 40년 동안 물질적 풍요와 번영을 이루었으며 유일하신 야훼를 버리고 가나안 지역의 풍요와 다산의 신을 섬김으로 종교적으로 타락한 관계를 음란한 혼인 관계를 통해 지적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대한 영적인 부흥엔 소원하였다.
아모스를 통해 북 이스라엘의 경제 사회적 부패와 이웃을 향한 올바르지 못한 행위들에 대한 경고를 보냈다면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북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적 타락으로 인해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대한 불편한 사랑의 관계[혼인 예표]를 통해 경고하고 있다. 바알과 아세라 숭배와 형식적인 제의를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귀족들의 삶을 경고하고 있다. 우상 숭배는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파기하는 본질적인 죄악이며 이스라엘의 삶에 하나님의 주권을 포기하는 배역행위와 같은 엄청난 죄악임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심판을 자초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은 다윗과 맺은 언약이 민족을 다시 회복시킬 희망임을 상기하고 계속하여 하나님을 바로 알아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을 호소하는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을 표현한 예언서이다.
 
호세아서 구성
 
호세아란 히브리어로 여호수아로서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 호세아서에는 여호와의 구원의 희망 메시지가 여러번 등장한다. , 여호와께서 배역한 이스라엘에 대해서 구원이 되심을 나타내는 책이 호세아서라고 할 수 있다. 호세아서는 다음과 같이 크게 3부분으로 구성을 나눌 수 있다(엄원식, 구약성서 본문의 문학 구조 (), p. 717, 2003).
13 : 음란한 이스라엘을 아내로 삼으려는 하나님의 괴로운 (사랑의) 심정을 호세아를 통해서 음란한 여인 고멜과의 불편한 혼인 예표로 표현하고 있다. 이 부분은 구조적으로 호11:1~14:9 과 대칭을 이루며 사랑의 출구를 마련해 놓으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준다.
 
410 : 북 이스라엘 전체(제사장, 백성, , 고위 관리 등)에 만연된 죄상을 구체적으로 지적[기소]하며 회개하여 형식적인 제의보다 진정성 있는 사랑 관계의 회복을 원하는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돌이키지 않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와 우상 숭배를 책망하며 심판을 예고하고 있다.
 
11-14 : 불순종으로 떠나가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이스라엘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로 고아로 떨어져가는 이스라엘을 향해 다시 받아들이실 것이며 돌아와 용서함을 받으라는 메시지를 재차 전하고 있다. 이 부분은 1-3장에서 호세아가 불륜의 고멜을 용서하고 다시 받아들여 맞이하는 부분과 대칭적 구조를 이룬다고 본다.
 
호세아의 고멜 사랑 비유 (1:1 ~ 3:5)
 
호세아의 결혼 은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계약 관계를 암시한다. 이는 조건적인 관계로써 제의와 윤리 의무가 뒤따른다. 하나님은 이미 호세아가 고멜이라는 여인을 이미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1:3) 바로 불편한 결혼을 명하고 호세아를 향해 앞으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할 것을 말하며, 불순종하여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멀리 떨어져 나간 북 이스라엘의 죄로 인한 상처받은 마음을 느끼도록 계획해놓으셨다.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 장본인인 호세아의 심정도 괴롭지만 이 혼인 서약을 주례하는 하나님의 마음 또한 편하지 않다. “우리는 오늘 호세아와 고멜이 결혼하여 하나가 되도록 축하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호세아군, 그대는 고멜을 그대의 아내로 맞이하여 오늘부터 앞으로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도 한결같이 그녀를 사랑하고 지켜주기로 맹세하시겠습니까? ,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례사는 고멜을 향하여, “ 그대는 호세아를 사랑하고, 존경하며, 그에게 순종하며 살아가는 동안 오직 그만 그대의 남편으로 맞아 살아가기로 굳게(?) 맹세하십니까? , 그렇게 하겠습니다.” , 여기서 잠시 유대인의 혼인 축제를 상기해보자.
 
29:22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3:11 시온의 딸들아 나와서 솔로몬 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의 어머니가 씌운 왕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6:7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61:10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45:14 수 놓은 옷을 입은 그는 왕께로 인도함을 받으며 시종하는 친구 처녀들도 왕께로 이끌려 갈 것이라.“
 
신부의 치장이며, 즐거운 혼인 행렬이며, 마을 사람들이 모여 노래하고 춤을 추며 온 마을 사람들이 기뻐하며 축하해주어야 할 결혼식이 당사자뿐아니라 그 부모들의 마음은 무겁고 흥이라기보다는 앞으로 빚여질 부부간의 갈등과 대립, 다툼, 불륜 등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을 어쩌면 호세아는 체념하듯 받아들여야했을 것이다.
호세아와 고멜은 결혼식을 올린 뒤에 몇 년 동안은 잘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태어난 세 자녀-두 아들과 딸-에게 붙여진 이름은 이스라엘을 향한 괴로운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이름으로 대학살의 장소인 이스르엘(Jezreel, 왕하 10:1~11), ‘사랑받지 못한다는 뜻인 로루하마(Lo-Ruhamah), 그리고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의 로암미(Lo-Ammi)로 지었다.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꺾어진 이스라엘의 활(5)은 이스라엘의 국력을 대표한 말이다. ‘사랑받지 못한다는 뜻인 로루하마(Lo-Ruhamah)는 상징적으로 여호와께서 그를 반역한 이스라엘 국가를 향하여 동정을 보이는 것을 오래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음을 내포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의 로암미(Lo-Ammi)는 음행하는 이스라엘은 사생아처럼 하나님의 백성이라 부르고 싶지 않다는 하나님의 마음과 심판의 의미를 담고 있는듯하다. 호세아라는 개인을 통해 가정안에서 사랑의 고통을 느끼게 하셨다. 호세아의 고통은 하나님의 상처받은 심정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일종의 윈도우와 같은 역할을 한다. 고멜의 불륜은 호세아에게 예상되었던 아품처럼 이스라엘의 죄악은 하나님께 충실하지 못했음을 반영해준다. 오히려 한발 더나아가 바알을 사랑했다.
고멜의 행동은 죄가 얼마나 하나님께 고통스럽고 직접적인 공격이 되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우리가 거짓말하고, 속이고, 도적질하고, 거짓 맹세하고, 정욕에 불타고, 하나님을 모독하고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선을 추구하기보다 우리 개인의 이익을 추구할 때마다 하나님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힌다는 것을 이 고멜 불륜의 불편한 사랑 이야기속에 담겨 있다.
21423절은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이다. 심판 신탁과 짝을 이루어 나타나는 2:14~23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구원받을 자의 자격을 논하고 있다고 본다. 어떤 예언자들은 광야시절을 이스라엘과 그를 사랑하는 자인 여호와 사이에 행복했던 때로 본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심판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내버려 두지 않는데, 여기에 하나님의 참 사랑이 있다. 몰간(Morgan)은 이러한 고난과 희망 사이의 관계가 하나님을 잘 나타낸다고 하였고, 또 그것은 율법과 은총 사이의 관계로서 율법은 죄의 결과로서 고난을 만들며 은총은 고난을 통해서 소망을 만든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어지는 호3:1~5에서 예언자의 경험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3: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하시기로 내가 은 열 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저를 사고
호세아가 집나간 아내를 데려와 살아가는 모습에서 하나님은 언약을 위반한 이혼한 아내 이스라엘을 다시 받아들이실 것이고 이스라엘을 용서하실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요약하면, 1:1 ~ 2:3 부분은 호세아의 불편한 혼인과 세 자녀를 통한 교훈, 2;4~23은 음행하는 고멜과 이스라엘, 3:1~5은 행음한 고멜을 값을 주고 다시 찾아 회복시키시는 호세아로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 와 사랑에 대한 쟁변(4:1~ 10:15)
 
결혼 은유는 계약 소송이라 부르지만 계약 위반의 은유가 아니라 이혼 소송의 은유이다. 이혼의 근거는 아내의 간음이다. 이스라엘의 간음이란 가나안 신 바알을 섬긴 것이다. 바알은 북왕국 이스라엘이 널리 섬겼던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으로 특히 농사관련 풍년을 기리기 위해 행음하는 형식으로 제사를 드렸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과 베타적인 언약 관계를 맺으셨다(26:1). 하지만 백성들은 언약의 핵심을 위반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향한 성실과 사랑과 지식을 결여하고 있다. 그리고 이같은 결핍의 결과적인 행위들은 거짓, 살인, 도적과 간음으로 나타나고 있다. 41~57절에서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와 우상 숭배를 책망하고 있으며, 4119절은 여호와의 쟁변으로 411절은 제사장의 책임, 1519절은 유다에 대한 경고로 되어 있다. 5115절은 예언자의 경고로서, 에브라임을 아시는 하나님(5:17), 유다를 경고하는 호세아(5:812), 회개의 도전과 치유(6:13)로 되어있다. 58절에서 ~ 611절에서는 하나님보다 앗시리아를 의지하려는 정치적 실패와 타락 그리고 공허한 희생 제사에 대한 책망과 바른 정신을 깨우쳐 이스라엘을 되돌려 놓으려는 여호와의 노력이 돋보인다. 특히 6:1-3에서 다시 심판 신탁과 대비하여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 받은 자녀로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한 삶의 지침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춘 삶을 말하고 있다.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7116절은 파멸의 씨에 대한 것으로서 7:17절은 내적인 혼란을, 7:816절은 망설임과 속임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지식(2), 죄에 대한 무감각한 반응(9), 죄의 자책(10), 죄의 속임수(16), 하나님의 거절하는 구속(13),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12)을 볼 수 있다. 819:17절은 선고 아래 있는 이스라엘이다. 여기서는 8:114절은 다시 타락하는 백성, 9117절 이스라엘의 곤궁과 포로의 이야기이다. 호세아는 8장에서 고발을 한 후, 9장에서는 민족의 쇠잔과 함께 포로의 형벌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도시(벧엘에서의 죄, 9:7-8, 10:11-15; 기브아에서의 죄, 9:9, 10:9-10; 바알 브올에 대한 죄, 9:10-14; 벧아웬에서의 죄, 10:5-8)에서 행해지는 이스라엘의 잘못된 영적 제의와 우상 숭배로 수치와 허황된 영광에 도취된 이스라엘을 책망하고 있다(9:7-10:15).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공의는 심판을 경고하고 자신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는 판결을 내리고 다른 백성을 찾아나서야 맞다. 하나님의 정의는 끝장내어야함을 말한다. 호세아는 율법과 계약을 호8:1에서 분명하게 언약을 깨트렸음을 지적한다.
 
9:17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내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시리니 그들이 여러 나라 가운데에 떠도는 자가 되리라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내가 사랑하는 백성을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 없음을 안다. 여기에서 고뇌하며 찢어지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여기서도 심판 신탁과 대비하여 다시금 구원의 손길로 다가와 복된 삶을 주시려는 구원 신탁이 보인다.
 
11: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이런 면에서 호세아는 심판 신탁과 구원 신탁 사이를 오간다.
호세아는 신명기와 같은 전통에 서 있고 신명기와 마찬가지로 계약의 율법 준수를 요구하고, 보다 근본적으로 성실과 진실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강조하고 있다.
사제직과 제의에 대하여 호세아는 우상 숭배를 하며 하나님께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는 백성들을 향해 제사보다 인애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려는 것이지 사제들과 제의를 비판하기 위한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호세아는 아모스와 달리 우상 숭배가 결국 정치적 혼란에 빠트리게 된 원인이 되었고 정치적 해결을 위해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않고 이집트 외세 의존하려던 것이나 앗수르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는 것이나 왕을 바꾸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쓸데없음을 비판하고 있다.
4-14장은 부패한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인내를 가지고 이스라엘과 쟁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잘 설명해준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기울어진 사랑과 돋아나는 희망(11:1 ~ 14:9)
 
여호와의 공의적 사랑이 표현되어 있다(11:113:16). 여기에는 하나님의 관용(11:111)에서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관심(11:14), 이스라엘의 징벌(11:57), 감정에 압도되는 매우 인간적인 모습으로 동정하시는 하나님(11:811)이 언급되어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정황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어렸을 때부터 사랑하셨다(1). 출애굽 사건을 가리킨다. 그들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팔로 않아주셨다(2). 광야 길을 인도하신 사건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에게로 갔다(2~4).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릴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8).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이 잘 나타나있다. 거짓과 탐욕에 젖은 이스라엘의 죄악성과 회개 촉구(11:1212:14)에서 허황된 열국 의존(12:1), 남왕국에 대한 말씀(12:26), 이스라엘의 교만(12:79), 이스라엘의 범죄(12:1014)를 볼 수 있다. 11:1-11은 내용 구문적으로 호14:1-8과 대칭을 이룬다(엄원식, 구약성서 본문의 문학구조(), p.726, 2003).
여기 12장에서는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죄의 어리석음(12:1), 죄에 따른 징벌의 정도(12:2), 죄에 대한 무관심(12:24)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특성(12:5, 10),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12:9), 하나님의 마지막 진노(12:14)가 그것이다. 11:12-12:8(속이는 아들)도 내용 구문적으로 호13;10-16(어리석은 아들)과 대칭을 이루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배은망덕이라는 관점에서 책망하신다(13:6).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친다(14:1). 죄 사함의 기도를 하고(14:2), 우상숭배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라고 권면한다(14: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치료하시고 사랑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14: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주셔서 그들이 백합화 같이 피게 하신다고 말씀하신다(14:5).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내리게 하신다고 말씀하신다(14:5). 감람나무처럼 아름답게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도 어김없이 심판 신탁이 이어 다시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온전히 구원할 구원 신탁의 완성도가 높은 은혜를 배푸시는 실질적인 복을 제시하신다.
 
14:8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 내가 그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
14:9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은 그 길로 다니거니와 그러나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지리라
 
지혜있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 과 구원의 심오한 역사를 깨닫고 여호와의 도를 따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곧 의인의 길이요 하나님께로 돌아와 새로운 관계의 축복을 누리는 삶임을 교훈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마치며
 
호세아서 전체에 흐르는 호세아의 삶은 벗은 몸과 벗은 발로 3년을 보내야만 하는 이사야의 소명(20:1-6), 장례식을 피하며 결혼을 포기해야만 하는 예레미아의 사명(16:1-9), 아내의 죽음 앞에 눈물을 보여서는 안되는 에스켈의 의무(24:15-27)와 유비를 이룬다고 보여진다. 이 시대에는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해 당시 사회 부정과 하나님과의 언약 파기같은 종교적 배역 행위에 대하여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선지자의 역할 감당은 누가하는가?에 대한 교회의 정제 기능과 하나님의 치료하심을 체험할 수 있는 과정적인 통로가 필요함을 느끼게해준다.
호세아만큼 히브리성서의 어떤 책도 은유가 풍부하지 않다. 특히 호세아서에는 묘사적인 은유가 많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완강한 암소 (4:16), 배반하는 상인(5:7), 병자(5:13), 간음하는 자(7:4), 어리석은 비둘기(7:11), 그리고 열매 없는 포도나무(10:1)가 그것이다.
호세아서의 중심에 흐르는 정신은 죄악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하나님을 힘써 알고 사랑함이 진정한 구원임을 호세아란 이름과 일치하고 있음을 본다. 호세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죄에 대하여 불편한 혼인 예표를 통해 체험하며 음란한 아내와 같은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은 불멸의 하나님 사랑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신약성서에서 30여회나 호세아서를 인용한 것을 보면 새벽빛(6:3), 늦은 비(6:3), 이슬(14:3), 백합화(14:5) 표현에서 메시야의 구원 예표의 표현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참된 사랑은 충동도 아니고, 하나의 확고한 결심이다. 그것은 지불되어야할 대가에 상관없이 사랑받을 대상을 위해 행동하는 꾸준한 헌신이다. 호세아는 고멜을 향한 자신의 행동과 실천가운데 사랑의 참된 의미를 입중해주는 메타포이다. 지불되어야할 막대한 값에 상관 없이, 닥쳐올 엄청난 고통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아내에게 헌신적인 태도를 결혼 서약 당시 고백했던 대로 바꾸지않고 입증해주고 있다. 하나님은 고멜같은 우리의 죄악을 보고 계시며, 불쾌하고, 역겹고, 배신감을 주는 고통임에도 친히 자신의 아들을 속죄물로 지불하면서까지 우리가 받을 가장 최선의 유익을 위해 행동하기로 결심하는 호세아같은 하나님의 결심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과 구원(사랑)이라는 상반된 두 개의 행동 도화선 양쪽 끝 중앙에다 터지기를 기다리는 폭약을 연결시켜 놓으시고, 도선의 한쪽 끝에는 공의(심판)란 표지판이 폭약쪽으로 가리키며 타들어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고, 또 다른 한쪽 끝에는 사랑이라는 쓰인 표지판을 가리키며 타들어가는 장면을 연상케한다. 정의와 사랑 이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충돌이 예견되어 있다. 이 두 공존할 수 없는 공의와 사랑은 갈보리 십자가에서 폭발을 일으킴으로 완전한 하나님의 공의 심판 신탁과 사랑 구원 신탁이 완성됨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1. 존 콜린스 (유연희 옮김), 히브리성서 개론, 한국 기독교 연구소, 2011
2. 콜린 스미스 (김재영 옮김), 손에 잡히는 성경 이야기 2, 국제제자훈련원, 2004
3. 엄원식, 구약성서 본문의 문학구조 하권, 금성출판사, 2003
4. 金正薰, 호세아와 아모스 豫言比較硏究, 인문학연구 제6, 2003.2, 5-29 (25 pages)
5. R. 하우스 (장세훈 옮김), 구약신학, p.627,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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