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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캐리 선교사 이야기

 윌리엄 캐리 선교사 이야기 (독후감 요약) 윌리암 캐리(William Carey)는 1761년 영국 노스햄프톤(northampton) 작은 마을인 폴러스페리에서 직조공인 애드문드 캐리 와 어머니 도로시에게서 가난한 가정의 다섯번째 이들로 태어났다. 다행히 여섯 살 때 영국 교국인 성 제임스 교회의 사무원이 된 아버지를 따라  이사한 곳에서 당시 문맹률이 매우 높던 시절이었지만, 다행히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책을 좋아했던 윌리엄은 책을 통해 외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호기심과 흥미를 느끼며 상상의 나래를 펴며 항해하는 상상을 하며 자랐다. 특히 외국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자극한 사람은 캐나다에서 돌아온 피터 삼촌을 통해 보고 경험한 놀라운 이야기들을 듣게되었다. 어렸을 때 지적 호기심이 컸던 윌리엄은  언어에 대한 감각도 뛰어나서 라틴어, 나중에는 헬라어, 히브리어까지 능통하게되었다. 열두살 때 학교를 졸업하고나서 사무직에서 일할 수 있을 만큼 영리하고 박식했지만 밖에서 일하기를 좋아했던 윌리엄은 시골의 드넓은 평원을 오고가며 농사의 일을 했지만 해빛 알러지로 얼마못되어 그만두고 클라크 니콜스 제화공의 도제로 일하게되었다. 여기서 윌리엄의 신앙을 바꾸게 될 친구 존 위르를 만나게 된다. 본격적으로 도제공으로 니콜스 밑에서 제화 도제를 배우며 온갖 잡일들을 맡아 일하느라 정신없이 지냈다. 도제공 시절 부츠 대금으로 받은 1 실링으로 깃털 펜을 사고 니콜스 제화공을 속이는 일로 당시 심각한 죄로 감옥에 갈뻔한 했는데 이 절박한 상황에서 윌리엄은 서원기도를 하였다: “ 하나님, 저를 이 상황에서 구해주신다면 다시는 거짓말하지 않겠습니다. 매주일 세 번씩 예배에 참석하고 다시는 그 어떤 것도 훔치지 않겠습니다. 제발 저를 도와주십시오. 저는 서인도로 끌려가고 싶지 않습니다. “ 속인 것이 들통이 났지만 애원하는 윌리엄이 애처러워 용서해줘서 하마터면 범죄자가 되어 서인도로 끌려갈뻔한 평생에 잊지 못할 날이 되었던 경험이 나중에 ...

세계침례교회사

 세계침례교회사(요약) 침례교 기원에 관해서는 몇가지 학설이 주장되어 왔는데 "전승설, "아나뱁티스트 영현설, "영국 분리주의자 후예설" 이라고 미국의 북침례교의 대표적인 역사신학자인 Robert G. Torbet는 설명하고 있다. 반면에 남침례교회의 대표적인 침례교회사 역사가인 H. Leon Mcbeth 교수는 ‘영국 분리주의 파생설’, ‘성서적 아나뱁티즘의 영향설’ 성서적 교훈의 계속설‘, ’조직화된 침례교회의 전승설‘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침례교회의 기원에 관한 최근의 통설은 영국 분리주의자 후예설인데, 엘리자베스 여왕시대와 스튜어트 왕조시대에 부패하고 타락한 영국 국교회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신자들로부터 침례교회가 기원했다고 하는 주장에 따른다. 이는 1609년에 영국의 분리주의자 John Smyth와 영국인 피난민들에 의해 화란 땅 암스테르담에서 일반침례교회가 그리고 1638년 경에 대륙의 칼빈주의에 기초하여 런던 근교 사우스워크에서 John Spilsbury를 비롯한 분리주의자들에 의해 특수침례교회가 세워짐으로 비로서 침례교회는 지상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스위스 형제단의 신앙고백에 근거한 뱁티즘을 베풀면서 근대적인 의미의 ‘자유교회’ 혹은 ‘신자의 교회’가 시작되었으며, 이는 침례교회의 하나의 큰 물줄기 가운데 한 지류라는 점에서 대륙의 아나뱁티즘과 신앙적인 관련성은 결코 과소평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아나뱁티스트들이 강조했던 ‘모인’ 교회, 신자의 뱁티즘, 즉 그리스도를 따르는 헌신적인 제자도의 삶, 양심과 신앙의 자유 그리고 교회와 국가의 분리 등의 신앙원리는 침례교회가 가장 소중하게 간직한 신앙원리이다. 그러나 침례교회의 기원과 관련하여 근원적인 뿌리를 찾고자 할 때는 역사적인 연결고리가 확실한 영국의 분리주의 운동에서 찾아야한다고 봅니다. 일반침례교회의 모체가 되었던 분리주의자들의 Gainsborough 교회, 특수침례교회의 모체가 ...

한국침례교회사

 한국침례교회사 (요약) 제1장: 한국침례교회의 시작(1889-1905) 이 시기를 프로테스탄트 선교의 물결을 타고 한국침례교회가 초라하게 뿌리를 내리던 시기로 보고 있다. 제2장:대한기독교회(1906-1949) 이 시기는 복음 전파의 일념으로 열악한 환경과 험악한 핍박과 박해 속에서 주님의 지상 명령을 승계함으로 침례교회의 정신을 생산해낸 시기로 보고 있다 제3장:대한 기독교침례회 시대(1949-1968) 이 기간은 신앙의 선조들이 물려준 정신적 유산위에 침례교 즉 신약성경에 입각한 교회의 골격과 체계화를 통해 과학적이고 조직적인 사역을 확장한 시기로 평가하고 있다 이 책은 위에서처럼 역사 구분을 3개의 장으로 대별하여 나누어 설명하고 있고 각 장별로 세분화하여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사역과 활동을 설명하고 있다.      오늘의 한국 침례교회의 태동은 1889년에 입국한 캐나다 독립 선교사인 말콤 펜윅 (Malcom C. Fenwick)에 의해 서울과 황해도 소래에서 10개월 머문후 본격적인 1891년 함경남도 원산에 정착한후  사역이 확대되자 1901년 “대한 기독교회”을 조직하여 사역 활동을 시작하였다고한다.      ∎제1장 한국침례교회의 시작(1889-1905) 말콤 펜익 선교사의 내한과 소래와 원산 정착,  엘라 싱 기념선교회 폴링 선교사와의 동역,  펜윅의 한국순회전도단 결성과 신명균과의 만남을 통한 순회선교 활성화, 엘라 씽 기념선교회의 사업 인수후 선교 활동이 전국적으로 본격화되기 시작하였고 지도자 육성을 위해 최초의 교육사업인 성경학원을 개원하였다.  펜윅은 신명균에게 충청도 사역을 맡겼고, 신명균은 놀라운 성과를 이루었다. ∎제2장 대한기독교회(1906-1949) 한국을 위시하여 동북아의 선교에 뜻을 둔 펜윅은 보다 효과적인 선교 사업을 위하여 조직의 필요성을 느껴 교단 창립의 준비를 해오던 중 1906년 강경에서 전사역자 소집하여 ...

전문인 직업으로 선교에 동참하시길 원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