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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편에 서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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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편에 서신 하나님   하나님은 예수님의 계보에 왜 유다를 선택해야 했는가   2013 년 4 월 13 일 족보는 인륜의 삶의 뼈대와 같이 그 전체를 꿰는 인간사이기에 대를 이어 씨족을 일으키고 유지하는 것은 인간사의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 그것은 하나님에게도 동일하다고 보여진다 . 아담으로 시작된 계보는 아브라함 , 이삭 , 야곱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다가 유독 야곱의 열두 아들중 레아의 소생 육남 일녀중 사 남인 유다로 이어지게 되는데 왜 하필 인간적으로 볼 때 선택받을 만한 자격이 없어보이는 유다에게로 주님의 시선은 대를 잇기 위해 선택되게 되었는가 ?   유다의 이름속에는 여호와를 찬송함이 숨어있다 . 레아가 넷째 아들을 낳고 내가 “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 리로다 ” 하고 그 이름을 유다라 짓는다 ( 창 29:35). 주를 찬송하는 자를 주님은 주의 계보의 반열로 들어오게 하신다 .   아버지 야곱의 편애를 받던 꿈의 청소년 요셉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던 레아의 형제들은 자신들이 받아야 아버지의 사랑 어쩌면 지분이 요셉으로 말미암아 막혔다고 생각했는지 호시탐탐 기회를 보다가 드디어 요셉을 제거할 절호의 찬스가 주어진다 . 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혼자 양치는 형들 앞에 나타난 요셉은 순진한 열일곱 청소년이다 . 형들의 계략은 요셉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 고민중이다 . 장남 르우벤의 생각은 죽이지는 말고 깊은 웅덩이에 던져버리자하고 제안한다 . 다른 형제들은 아무도 모르게 죽이자라고 제안한다 . 그런데 유다는 혈육이니 죽이지는 말고 이스마엘 상인에게 팔자라고 제안한다 . 세가지 제안중 첫 두 개는 요셉의 생명을 앗아가는 결정이다 . 반면 유다의 결정은 생명은 건드리지 않고 존중하는 정신이 담겨있다 ( 창 37:26). 여기서 하나님은 누구의 편을 드셨는가 ? 유다의 편이다 . 왜 일까 ? 하나님은 생명을 귀히 여기신다 .   ...

하나님의 절대 능력의 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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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절대 능력의 제한 창 1:31, 창 2:17, 시 139:14, 눅 9:25, 눅 23:33   2001. 10.13 하나님의 창조 사건을 우리편에서 보면 위대한 하나님의 사역이지만 하나님 편에서 볼 때 하나님의 창조 사역은 하나님의 절대 능력의 제한 이었다 .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어찌 이 정도의 피조된 우주 속에 다 드러내게 할 수 있었겠는가 ? 오히려 하나님은 자신을 제한하는 그 과정에서 우리를 향한 엄청난 사랑을 표현하시고 기뻐하신다 . 이는 마치 어머니가 갓난 아이와 대화하기 위하여 유치하게 들릴 수 있는 어휘들을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모습 속에서 어머니의 제한적 사랑이 있으며 자기 제한적 집념이 있다 ( 장경철 목사의 쉽게 배우는 교리 이야기 중에서 ) 창조된 물질 세계로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그 능력의 용량을 다 담을 수 없듯이 보이는 것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가늠하기란 무리수이다 . 불행하게도 우리의 판단에는 보이는 물질 세계의 능력을 통해 설계자의 능력을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 성경에 다른 피조물에 비해 특별히 사람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진술이 여러번 나타난다 . 그중 하나가 인간을 창조하시고 심히 보기에 좋았더라고 표현은 하셨다 . 그 진정한 의미가 무엇일까 ? 그 무엇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을까 ? 생각해봅니다 . 눈 , 코 입 등 이목구비가 제대로 붙어 있는 , 아름다운 몸매의 두 다리로 걷는 키가 2m 이하의 길다란 체구를 보시고 좋았다고 했을까 ? 보이는 피조 세계를 보시고는 그냥 좋았다라고만 하셨다 . 하지만 원 설계도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무한 능력을 다 담아 표현할 수 있는 ,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능력의 제한을 받지 않는 충분한 그릇으로 만들어졌기에 보시기에 좋았던 것이 아닌가 한다 . 말을 대단히 아끼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인간을 향하여 심히 보기가 좋았다고 , 다윗의 성령 감동을 통한 표현으론 우리를 신묘막측하게 만드셨으며 (fearfully ...

불확실한 시대의 선명한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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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시대의 선명한 기준    2006년 8월  잘 아는 예화로 말문을 열려고 합니다 . 어느 마을에 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3 명의 친구가 있었고 제일 가까이 지내는 없어서는 안 될 친구와 일이 있을 때 도움이 되는 친구와 별로 달갑지 않은 그러나 간혹 필요했던 친구들이었다고 합니다 . 하루는 왕의 어명이 떨어져 대궐로 들어오라는 명령을 받고 고민하다가 세 친구를 찾아가 함께 가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 제일 가까운 친구에게 찾아가 같이 동행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이유도 말하지 않고 동행해 줄 수 없다고 잘라 말하였고 다음 가까운 친구에게 찾아가 동행을 부탁했을 때 대궐 입구까지는 같이 가줄 수 있으나 대궐 안까지 동행해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 마지막으로 별로 가까이 지내지 않던 달갑지 않은 친구 집을 찾아가 함께 동행 해줄 것을 요청하자 기꺼이 승낙하며 임금님 앞에 가서 당신이 한 일을 변호할 때 증인으로 돕겠다고 허락하였다고 합니다 . 제일 가까운 친구는 재물과 같은 것이요 , 두 번째 가까운 친구는 인간 관계와 같은 것이요 세 번째 달갑지 않게 여겼던 친구는 선을 배푼 일과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 어느 공동체나 사회 조직에 이같은 세 부류의 사람 혹은 집단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 세 부류의 가치 기준은 서로 상이하며 나름대로 합리성도 있지만 참 교육을 지향하는 기독 대학의 가치는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 우리가 사는 21 세기는 참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가치기준이 다양하고 불확실한 시대임에 틀림없습니다 . 정보화의 파워로 한 개인이 국가를 대상으로 전쟁할 수 있고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대이기도합니다 . 다원주의 접근 , 상대주의 잣대로 어찌 보면 표류하는 세상에 노출되어 살아가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 분명 우리는 선명한 기준을 찾고 있으며 “ 그 무엇이 이 혼란한 시대의 확실한 판단 기준인가 ?” 하며 질문해봅니다 . “ 내가 정말 알아야하는 모든 것은 유치원...

놀라운 증거들 수학적 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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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증거들 수학적 지문: (fingerprint) 2006. 7. 22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 (Number) 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Name) 을 부르시나니( 이사야  40:26a)" 우리 주변은 온통 수에 얽힌 이야기가 많고 아날로그 시대에서서 유비쿼터스의 디지털 정보 화 시대에는 모든 정보가 수치화되어 표현되고 저장되고 전달된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 , 이다 믿는 신앙이이건 아니건 성경은 놀라운 지혜의 책임을 인정한다 과연 그럴만한 수치적 증거를 찾을 수 있을까? 과학적 수학적 증거를 위한 고찰 히브리어나 헬라어는 문자 단어 문장 구 절 문단마다 확정적인 수치(numeric value)를 갖는다 즉 현재처럼 수를 표현하기 사용하는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하지 않았다 .  예를들어 헬라어로 예수 는 라고 표현되며 여기서 는 을 나타내고 (JESUS) IHSOUS I 10 , H 는 8을 나타내고 S는 200을 나타내고 O는 70을 나타내고 U는 400을 나타내고 S는 200을 나타낸다 이 모두를 다 더하면 888이 된다 . 성경에 자주 나타나는 7에 관련된 수들을 살펴 보면 1)안식은 7번째 날 2) 에굽에서 7년 풍년,7년 기근 3)  여리고성이 함락될때 7곱 나팔을 가진 7곱명의 제사장이 성 주위를 7번 행진했다 4) 매 7년마다 이스라엘 땅은 기경하지 않았다. 5)  솔로몬은 7년간 성전을 건축하였고 완성된 후에 7일 동안 잔치를 베풀었다. 6) 나아만 장군은 요단강물에 7번 적셨다 7) 계시록에 7이란 숫자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7곱 교회 7곱 나팔 7곱 촛대 7곱 인 7곱 잔 7곱 별 7곱 영 등등 7이란 수가 50 등장한다.  최근에 이 특이한 방법으로 신구약 성경속에 수가 스며들어 있음을 발견하였다 . 성경속에 존재하는 수 히브리어로 창세기 장 1절은 7개의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7...

백만송이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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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송이 장미 ( 부제 : 침묵을 깨고 ...) 2007.05.19   누군가 내게 백만송이 장미다발을 주었다면 분명 그 사람은 내게 지대한 관심과 사랑의 마음을 표현한 것일 것이다 . 그런데 하나님은 온 산과 들판에 시시때때로 장미 꽃만 아니라 이름지을 수 없을 만큼 많고 많은 아름다운 온갖 종류의 꽃들로 수놓으시며 우리의 시각을 즐겁게하시려고 우리를 향한 그 관심을 수 천년동안 쉼없이 보이셨는데 ... 그 뿐만이 겠는가 꽃향기 내음새로 시시때때로 우리의 후각을 자극하며 사랑의 마음을 전달하려하였는데 ... 그뿐만이겠는가 ? 바람소리 , 새소리 , 물소리 , 동물의 울음소리 , 사람의 말 소리들을 통하여 오늘도 수백만마디의 의미있는 소리를 보내시고 계시는데 ... 누군가 내게 수 천년을 마다하지 않고 여러 사람들을 보내며 나의 사는 모습에 눈여겨보며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내게 엄청난 열정을 쏟고 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 자 성경의 신구약을 통해 우리를 향해 보내신 하나님의 사자들은 무엇을 증언하고 있는가 ? 그것도 수십년도 아니고 , 수백년도 아니고 수천년 동안을 끊임없이 보내시며 종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시려고 ... 누군가 내게 수천통의 사랑의 편지를 보내며 소식을 전하며 관심을 보였다면 그 사람은 진정 나를 사랑하는 사람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 수없이 쓰여진 성경의 구절구절마다 질투하리만치 나를 향한 하나님의 애정 (?) 의 몸짓이 보이질 않는가 ? 어찌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지 못하겠는가 ? 꼭 ‘Honey, I love you.' 란 말로 고백해야지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 혼줄나게 야단치시는 부모님처럼 , 막무가네로 울어대는 아이에게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사주시는 부모님처럼 , 좌절과 실망에 몸부리치며 죽고싶은 그 순간에 찾아온 친구처럼 , 깨알같이 흰 종이 위에 쓰여진 눈물로 써내려간 길고도 긴 편지처럼 ... 지금도 그 사랑 전하려고 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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